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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늘의 빗소리 #오늘의 빗소리 손으로 곱게 메모지를 접고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을 무렵, 바깥으로 거센 바람이 보일만큼 뒤흔들리는 빗줄기가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으면 유독 잿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교 때만 하더라도 푸른빛이 돌았는데, 저변의 먹구름이 이제야 자리를 트고 비를 뿌리는 탓이다. 난 그 소리가 듣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었다. 적막으로 일관하는 사무실에선 창가 바깥으로 줄기차게 울릴 빗소리를 알 수 없다. 이곳에서는 그저 넘기는 종잇장과 간혹 소곤소곤한 대화, 업무를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만이 공간을 대변할 뿐이다. 이따금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다. 이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난 무심코 일을 멈추고 멍을 때리고 있다. 고민이 많은 한 달. 생.. 더보기
#42. 시간 #시간 시간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 차츰 둔감해질수록, 하루의 빠르기는 변화한다. 오늘이 며칠인지 모르고 마냥 흐르는 채 기다리고 있다 보면 그게 하루든 일주일이든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렵다. 매일매일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그 한 순간의 놓침은 노력한 만큼의 배가 되는 허망함을 안겨준다. 그게 시간이고, 어쩌면 그게 전부이다. 고등학교 무렵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느렸던 건, 어쩌면 매일이 똑같다고 투덜거리는 사이에도 각기 다른 인간관계와 매번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하루하루가 달랐기 때문이다. 1교시와 2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며 매 순간의 시간을 확인했고 결코 둔감해질 리가 없었기에, 학교를 가지 않는 그 소중한 시간들로부터. 고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햇수가 지나 대학이 오고 정말 신기.. 더보기
국제신문면 열어가며 2018년 국제정치론 강의가 시작된 이래2018.03.06. 3달이 지나 제출일2018.06.03.이 다가오고 있다. 이 3달 동안 다양한 국제적인 이슈가 발생했다. 단연 중심은 동북아와 한반도라고 생각한다. 남북과 미중. 괴로워하는 일본처럼 대립하는 이해관계와 조율. 협상과 정치처럼 다양한 드라마가 나타나고 있다. 왜 그토록 일본이 북한을 두려워할까. 내지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가 무엇일까. 모두 화두거리임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많은 이슈만큼이나 정리도 중요하다. 중요한 내용들을 시간순서로 빠짐없이 나열하다 보면 그만큼 토픽도 섞이고 두서없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그랬다. 때문에 집중과 정리를 위해서 미흡하더라도 국가 행정부 별로 정리해보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걸 최선이라 생각하고 .. 더보기
#41, 안다는 거짓말 #안다는 거짓말 단어를 외울 때 이제 외웠다고 생각이 들 때면 우린 장을 넘긴다. 그리고 추후 단어가 나왔을 때 자주 잊고는 한다. 그걸 라고 일컫는다. 그 단어를 알고 나서는 꽤나 생각이 많아졌는데, 나한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심정이었다. 난 그만큼 자만과 허영이 많고 내가 무얼 보면 알고 있으니 알아서 하겠다는 건방진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이다. 허영심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지적받은 내 잘못이었다. 인연을 앗아가는 핵심이기도 했고 쌓아올린 자신을 무너트리는 결점이기도 했다. 밥 먹듯이 나오는 거짓말의 까닭도 내가 안다고 말했으므로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맞지 않는 앞뒤를 걸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게 딱 그 꼴이다. 대충 알아서 장수를 넘기고, 다 외웠다고 말하고 싶은. 내가 이만큼 내 할 일을.. 더보기
#40, 종강 지난 어떤 반년보다도 기억이 물씬 스며든 짙은 시간을 거듭했다. 어느 해보다 노력했고 동시에 실패했던 극적인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랑받은 만큼의 미움 받음이 원망스러운 시간동안, 자책할 수 있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자책을 했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그렇듯 돌이켜보면 내 실수밖에 없고 말뿐인 허상인 자신에게서 언제야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넋 놓고 막연한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이제는 그래야 한다고 절실히 느낀다.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 시도했다지만 그건 모두 핑계고, 단지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다. 내 처지에서 내 상황에서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내 노선에 한 치의 오차를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건 전혀 아니었고 실제로 나.. 더보기
#39 왜 우린 공감하는 척 하는가 #왜 우린 공감하는 척 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동의로부터 혼자만의 부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뻔한 이야기다. 사람은 원래부터 불쾌하고 어색한 상황을 기피하고, 때문에 작은 동의로 문제를 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공감을 내어준다. 그러면 다수와 함께하고, 독자적인 고민을 안을 필요가 없으므로 편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하는 척 한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을 때 나 혼자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 테두리 안에서 함께하기 위해 웃는 거다. 한편으론 그것이 잘못된 사실이더라도 덜컥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렇단 이야기다. 이따금 공감하지 못한다고 하면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이 나타나곤 한다. 왜 이해를 못하냐.. 더보기
#38, 나도 알지만 #나도 알지만 귀가 열려있다고, 입도 열려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말을 참 잘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나 감동한 적이 많다. 나의 몇 마디가 다른 사람들한테 조언처럼 느껴지고, 감동스럽고, 상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꽤나 선전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따금 내가 타인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제법 감성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다. 물론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고작 글귀를 읽었다고 우는 모습을 보이면 이상하게 보일까 내면을 감추면서도 말이다. 그만큼 타인의 진정성이 있는 모습을 나는 몇 배고 담백하게 이해해줄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나는 자기 고민을 풀어내려고 하면 말문이 턱 막히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다. 까닭이란 게 누구나 그렇지만 나는 더더욱 그렇다. 내 모든 행동과.. 더보기
인생, 그 의미 인생, 그 의미 영화를 관람하기에 앞서 원작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본 바 있다. 본래 원작과 영화는 연출·표현에 있어서 완전히 동일한 내용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작 결말부의 충격적인 내용을 보고는 원작이 아주 아름답게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식으로 표현했는지 많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자체로도 근대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설하고, 결국 영화은 주인공 후우꾸웨이(푸궤이)의 약관부터 노년까지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과제라서 그냥저냥 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보고나니 각 장면이 기억날 정도로 많이 몰입했다. 관람 이후 두 가지의 대목을 느꼈으며 그 첫 번째는 푸궤이 인생 그 자체이고, 두 번째는 중국 현대사 표현이다. 첫 번째. 상영시간 내내 오직 한 사람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