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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열여덟번째, 섭섭한 마음에 #섭섭한 마음에 무언가 너에게 대단한 선물을 바라지는 않았다. 최대한 부담 주지 않으려고, 혹시나 네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나는 항상 걱정하며 행동했다. 혹시나 내가 너를 오해하지는 않을까 함부로 지레짐작하지 않고, 이따금 너를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난 최선을 다해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그만큼의 보상을 바라는 심리기재였지만, 역시 사람과 감정은 호소한 만큼의 감정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투입대비산출량의 효율이 아주 엉망인 셈이다. 이미 넌 확고한 입장이고 내게 돌아섰으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선택 역시 존중해야 했기에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서운함과 그리움은 여전히 몸에 배겨 이곳저곳을 맴도는데, 그래서 중간 중간. 네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시간은 우.. 더보기
열일곱번째, 이해타산 #이해타산 “넌 선물 줄 사람이 많네.” “응, 오래 사귈 친구들은 선물해주려고.” “엄청 친한 친구가 아니라?” “둘이 같은 거라 생각하는데 아닌가.” “완전 다른데” 친구는 단호하게 두 종류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오래사귈 친구와 친한 친구, 난 같다고 생각했음에도 친구가 내 의문을 부정으로 받아친 탓에 깊은 사색에 빠졌고, 나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했는지 생각했다. 보통 인간관계에는 ‘깊이’가 있다. 서로 비밀을 공유하고, 아는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재미있는 취미처럼 같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깊이 있는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 반면 내 인간관계에는 깊이라고 할 무언가가 없다. 마치 초겨울의 얇은 얼음판처럼 언제고 힘을 가하면 쉽게 깨질 관계들뿐이었다. 그건 상대의 문제라기보다 어느.. 더보기
열세번째, 빈자리 #빈자리 자퇴한다고. 아, 그래. 털어놓자면 지방 수준이 거기서 거기라고, 나와 너와 우리를 비하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그 결말은 대개 정해진 듯 곧바르다. 항상 곁에서 어이없지만 재밌는 이야길 늘어놓던 네가 앞으론 자퇴해서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 쓸쓸한 일이겠구나 싶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선택이 있고 그건 자유이며 내가 간섭할 수 없기에, 고작 정 때문에 학교에 남아있다면 되려 한심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말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헤어지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이게 인연의 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하길, 대학교에서 만난 인연은 정말로 얇디 짧다고 했고 난 믿지 않았지만 이제와선 믿고 싶지 않더라도 믿어야 한다. 굳이 사족을 달 것 없이 우리가 헤어지는 일만으로도 증.. 더보기
아홉번째, 관계의 상대성 #관계의 상대성 정말로 친했던 친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울려 계속 같은 반에 집까지 가까웠던 우린 남들이 형제라고 부를 만큼 가깝고 친한 사이였다. 6년이란 시간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붙어 다니며 지겹도록 놀았던 우리 둘은 적어도 당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중학교를 진학하고 내가 이사를 가며 우린 만나기 어려워졌고 그 무렵이 그렇듯 새로 친구를 사귀면서 아마도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그러나 내게 그 친구의 이름과, 집 주소, 생김새는 언제까지고 하나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기억 속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나와 잘 맞고 가장 가까운 친구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분명히 생각했다. 8년 뒤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게 있어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