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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홉번째, 관계의 상대성

#관계의 상대성

  정말로 친했던 친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울려 계속 같은 반에 집까지 가까웠던 우린 남들이 형제라고 부를 만큼 가깝고 친한 사이였다. 6년이란 시간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붙어 다니며 지겹도록 놀았던 우리 둘은 적어도 당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중학교를 진학하고 내가 이사를 가며 우린 만나기 어려워졌고 그 무렵이 그렇듯 새로 친구를 사귀면서 아마도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그러나 내게 그 친구의 이름과, 집 주소, 생김새는 언제까지고 하나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기억 속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나와 잘 맞고 가장 가까운 친구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분명히 생각했다. 8년 뒤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게 있어서 반가운 만남이었다. 우연스럽게 친구와 마주쳤다. 이따금 떠올리던 친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딴에 자랑할 수 있었다. 작은 눈과 억양, 말투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내 기억과 똑같다며 내심 기뻐했다. 8년이 지나 만났다는 사실 자체도 무척 감동적인 재회였다. 그 친구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단 사실만 뺀다면 말이다. 그리곤 돌아가는 길 난 깊은 우수에 빠져 한참 생각에 허우적댔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중학교를 가고 친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테고, 기록이 쌓이듯 내 정보는 밀리고 밀려 이젠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너무나도 서운한 느낌을 지워낼 수 없었다. 적어도, 나를 알아보기만 했다면. 인사라도 했다면. 나한테 있어서 넌 오랜 시간 보고 싶었던 친구였는데, 상대는 아니었다면 그 씁쓸한 내음이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 수밖에 없었다.

  관계의 상대성이었다. 너와 내가 느끼는 관계는 다르고 넌 단지 나를 잊었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답답했던 속내를 털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핸드폰을 열어 번호부를 천천히 살펴봤다. 카카오톡도 아닌 전화번호부에 이미지를 달고, 애칭을 달아주고, 한명 한명을 기억하려는 내 노력을 생각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그건 관계의 허무감과는 다른 의미였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 큰 의미였다면 나 역시 그 누군가에게 보답해줘야 할 텐데. 내게 그럴 능력과 여유가 있을까. 설령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하더라도 난 모두에게 소중히 오랫동안 연락하고 아껴줄 수 있을까. 나 역시도 보답해줄 수 없는 마음에. 어쩔 수 없는 관계의 상대성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친구를 아끼는 마음은 모두 같으나 모두에게 친절할 수 없음을. 모두를 소중히 생각한다고 모두를 챙길 수 없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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