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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난 연애경험이 별로 없어 그냥 누군가를 좋아한 경험이 많은거지 그렇다고서 아무나 좋아한 건 아니야. 내겐 늘 어떤 기준이 있었어 진짜 얄미운 인간이야 나는 난 서로의 경계를 정확히 지켰어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나도 굳이 말하지 않았고 상대가 말하는 만큼은 반드시 나도 그만큼 움직였어 뭔 체스를 하듯 그랬어 그러다 상대의 엇박자가 세번 반복되면 금방 접었지. 근데 그게 처음부터 그랬던 건 또 아니지. 옛날의 내가 그런걸 퍽이나 해냈겠어. 그래서 옛날엔 거의 무작정 들이박았어. 상대가 대답할 때까지. 상대가 관심가질 때까지. 근데 그게 부담이었는지 그애가 나를 엄청나게 피하더라 기겁하는 수준이었지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있었어 패배자? 아냐 그정도로는 부족해 그냥 스스로가 쓰레기였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 더보기
옛사랑 나같이 어린애가 뭘 알겠어 사랑같이 오글거리는 말이라니 근데도 난 그 말이 너무 좋아. 언제였지? 천안버스터미널에서 밥을 먹고 그 7월의 한여름에 걸어다녔어 그 해엔 너무 더워서 모기도 없었거든 이마에 묘하게 맺히는 땀이 말이야 와. 지옥이었지. 근데, 좋아하던 누나가 천안역까지 걸어가자는거야. 뭐? 미쳤나봐. 천안역까지 어떻게 가자는거야? 그래서 미친듯이 좋아서 신나게 걸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같다. 그 누나가 이유없이 나한테 걷자했을까? 아니 애초에. 같이 밥먹자고 한 것도. 나한테 말을 건 것도. 나한테 잘 웃어준 것도. 내 착각속 세상이었을까? 그리고나서 난 휴학을 했고, 누난 일본으로 떠났어. 어쩌면 그 사이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고 또 실제로 그런 경험과 .. 더보기
돼지 야이 돼지야. 자기도 돼지인게 밥먹듯 나를 놀린다. 뱃살이 이게뭐야. 으이그 엄마한테 혼나듯 혼나서 주눅이 들면 아냐아냐 삐지지마. 미안해 이젠 자기가 미안해서 나를 달랜다. 뭐하는거야? 꽁트야? 그런 생각을 하며 아무도 없는 버스에서 킥킥 웃었다. 이런게 연애인가? 행복이란 표현은 아니더라도. 사소한 일상에서 생각나는게, 뭐만 하면 네가 스며든게, 향수같다기보단 섬유탈취제 같은거지. 그래. 향수처럼 진하면 금방 질려. 처음 시향지로 맡으면 좋긴 좋지 취향이 확확 갈리는 건 말할 게 없어 그러다 질리면 쓰지않는거야 그런건 너무 우울하지 않겠어? 누구의 말마따나, 쓰레기같이 연애한다는 거. 그게 정말 화끈한 인생사를 원한다면야 나는 그렇게 안살테니까. 네가 어디 그렇게 한번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심.. 더보기
스물네번째, 성장을 의심하다 #성장을 의심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상황을 마주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당황하거나, 부끄러워지는 일도 다반사고 때때로 잘하는 일이라 자부했지만 남들에게 보여주자니 역부족한 상황이 있을 때 우린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진다. 나는 성장했다고, 내지는 변화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따금 보여 지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한참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내가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뭘까. 확실한 척도가 존재할까. 난 이런 고민들에 항상 생각을 가지는데, 내가 내리는 대답은 이렇다. 변화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주체도 나이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상 역시 나다. 그럼 변화는 한사람에 한정되는 일일까? 난 이 부분에서 ‘내 변화가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가치를 가졌을 때’, 비로소.. 더보기
스물세번째, 순수한 죄책감 #순수한 죄책감 평생 글을 쓰겠다고 약속한 계기가 있다. 바로 죄책감이다. 나는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햇수로 치면 벌써 4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많은 인간관계가 그렇듯 마냥 싸운 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막심한 선택이었는지 서서히 깨달았다. 의 표현처럼 오히려 시간이 흘러 기억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억은 더 세세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듯하다. 사람을 가벼이 여기던 시절에 그냥 재밌는 놈이구나 싶어 친하게 지냈던 옛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네 도움은 내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다. 막무가내로 쓰던 글을 너에게 보여줬고, 너는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부담 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모든 꿈에 대해 부정하던 나와 정반대의 가치관과, 그러면서도.. 더보기
스물두번째, 지적허영 #지적허영 나쁜 버릇이 있었고, 지금도 남아있다. 그건 짙은 허영심이다. 당장은 괜찮아 보이면서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웃음이 새어나올 옛날 일들이 떠오른다. 매일 무식하다고 무시 받은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내가 잘하는 게 글쓰기라 생각하곤 한창 위로하던 그 무렵. 나는 사람들에게 단어 선택이 부자연스럽고 안 쓰는 말을 괜히 고집한다고 혼났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단어들은 내 자신감이었고 글을 과시하는 수식이어서 형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도통 잔소리 이상으론 듣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고 글만 쓰다 보니 보이는 게 내 글뿐이고, 그래서 내 세상에 빠져든 탓이다. 그런데 대학교 진학 후 교수님에게 들었던 비평이, 내가 얼마나 잘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토록 했다. 딴에는 잘 썼다고 제출한 답.. 더보기
스물한번째, 우산 #우산 “너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꼭 우산을 생각해라.” 나는 그 차디찬 겨울날 교수님의 짙은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원래 교수란 딱 두 가지인데, 이상하거나, 엄청 이상한 사람. 이 두 가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교양 과목의 그 교수님은 워낙 이상하고 특이했지만, 그 생각은 두터운 음량만큼이나 짙은 감성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가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해주시는 긴 이야기들은 처음엔 코웃음 치다가 점점 매료되어서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은. 어린 내가 바라보기엔 너무 높아 올려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같이 들었던 친구가 들으면 들을수록 존경스러운 교수님이라며 입이 달도록 칭찬했을까. 우리가 받은 건 고작 매 달 밀려들어오는 과제와 매 주 얻어듣는 호통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교수님.. 더보기
스무번째, 주워담는 일 #주워 담는 일 누군가 부정해도 나는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모든 사유는 같은 흐름이고, 우리가 저마다 가진 말의 기저엔 동일한 논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는 글은 표현법이 다를 뿐이지 모두 같은 이야기며 단지 직업적인 작가들의 글은 더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들에 의해 매문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글 쓰는 일에 관해서 많은 푸념을 하는데, 다름이 아닌 자기 글을 의심하는 일이다. “내가 작가도 아닌데, 이런 글을 써도 누가 봐 주겠냐”며 하소연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어쩌면 읽고 있는 당신과 글을 쓴 나도 분명 해보았던 말이다. 분명 글은 배운 모두가 쓸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다. 그렇지만 주변의 시선은 오묘하게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는데, 마치 우리의 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하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