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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스물두번째, 지적허영

#지적허영

 

    나쁜 버릇이 있었고, 지금도 남아있다.

    그건 짙은 허영심이다. 당장은 괜찮아 보이면서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웃음이 새어나올 옛날 일들이 떠오른다. 매일 무식하다고 무시 받은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내가 잘하는 게 글쓰기라 생각하곤 한창 위로하던 그 무렵. 나는 사람들에게 단어 선택이 부자연스럽고 안 쓰는 말을 괜히 고집한다고 혼났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단어들은 내 자신감이었고 글을 과시하는 수식이어서 형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도통 잔소리 이상으론 듣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고 글만 쓰다 보니 보이는 게 내 글뿐이고, 그래서 내 세상에 빠져든 탓이다. 그런데 대학교 진학 후 교수님에게 들었던 비평이, 내가 얼마나 잘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토록 했다. 딴에는 잘 썼다고 제출한 답안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못썼다.’라는 평을 들으니 말문도 막힐뿐더러, 단어 선택이 남용되고 글을 막 쓴다는 이야기에 그제서 내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쓴 비평도 달게 받아야한다고, 그게 옳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도 막상 내게 닥친 진솔한 평가로부터는 말도 못할 만큼 충격을 받아 부끄러움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런데 충격을 받았다고 어디 글을 안 쓸 수는 없고, 결국에는 이를 악물고 참아 내 글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결국 지적허영은 나를 포장하려는 욕심으로부터 나온 실수였다. 시간만큼 노력을 투자하니 지금은 나아지고 있다지만 간혹 눈에 보이는 티끌이란 여전히 우습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내게 조언해주려고 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겠지만 귀띔해도 듣지 않았을 당시의 나를 본다면 읽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말이다. 결국 내가 내 실수를 인정하게 된 계기는 타인의 조언이 가진 설득력보다, 스스로가 느끼는 충격의 정도였다. 자기가 느끼지 못한다면 수만 명이 읽고 감동한 명문장보다도 독한 몇 마디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렇다고 엄청 부끄럽지는 않다. 내 허영심도 한편으로는 멍청하다고 무시 받던 스스로를 위축하지 않으려는 심리였을 테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습관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솔직하고 정성스러운 글쓰기를 위해서는 바로잡아야 할 일이었으니 힘들고 화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지적허영에 빠지지 않고 누군가의 비판을 필터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에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제 내 일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어색하게 글을 꾸미지 않으면 된다. 이 하나만 유의하고 글을 쓰도록 하자. 허영심은 딱 치우고,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도저히 옛날 소논문은

진짜 못 읽어 줄 만큼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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