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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스물네번째, 성장을 의심하다

#성장을 의심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상황을 마주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당황하거나, 부끄러워지는 일도 다반사고 때때로 잘하는 일이라 자부했지만 남들에게 보여주자니 역부족한 상황이 있을 때 우린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진다. 나는 성장했다고, 내지는 변화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따금 보여 지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한참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내가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뭘까. 확실한 척도가 존재할까. 난 이런 고민들에 항상 생각을 가지는데, 내가 내리는 대답은 이렇다. 변화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주체도 나이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상 역시 나다. 그럼 변화는 한사람에 한정되는 일일까? 난 이 부분에서 내 변화가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가치를 가졌을 때’, 비로소 사람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안팎으로 흘러 나를 뛰어넘을 때 성장했다고 믿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는 일과는 다르다. 그건 타인에게 내가 변화했다고 과장하는 일과 달리 자연스레 이렇게 생각 하는구나라고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행동하는 일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더라도 타인에게 과시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자기만족하면서도 굳이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운동했다는 사실이 부정당할 리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유형의 성장은 개인적인 측면으로 보이지만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족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포기와 부끄러움을 차치하고, 아 부족했으니 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앞서가는 능동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우리가 변화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형태이므로. 물론 그런 생각이 쉬울 리는 없다. 하지만 긍정을 함유하고 보다 일관된 자세를 유지할 때 성장이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스로를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게임처럼 인터페이스를 통해 능력을 계측할 수 없고, 단지 추상적인 개념으로 가늠하며 내가 이만큼 왔다고 짐작할 뿐이다. 간간이 나타나는 상황들이 성취감과 만족감을 가져오면서도 정말 변했는지 의심하는 까닭도 결국 우리가 정말 변화했는지 계속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때 머리를 옭아매며 해답을 찾기보다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게 명료한 해답이라 생각한다. 그것 역시 성장이라 생각한다. 조금은 맥락에 벗어나지만, 난 성장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 블로그에 쓴 글, 독설가에 대하여(2018.02.09.)가 많이 떠오른다. 무엇을 하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딴의 논리적인 이야기로 목표와 현실을 결부시켜 이런 상황이므로 너는 어려울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관론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노력이 가치를 지닐 때는 힘듦을 극복하고 무언가 하나라도 얻었을 때 그 의미를 가지지만, 이를 싹을 치는 사람들은 성장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고 본다. 부정적인 사유를 인생의 저해요소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씨네21 평론가가 아닌 이상, 스스로를 신뢰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내가 그렇게 노력할 때 누군가 나를 인정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게 성장이라 생각한다. 딴에 노력해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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