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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스물다섯번째, 그래도

2018.03.12.

#그래도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영역이 있다. 온갖 험담이나 악담이나 뒷담이나, 진짜 세상 끔찍한 이야기를 들어놓는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그렇다. 정말 듣다보면 이 새끼들이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해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어쩌다보면 술기운에 동조해 동의하는 나 역시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차례차례 술이 깨어가며 멀쩡한 정신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이게 어디까지가 맞고 이해해야 하는 일인지 의아할 때가 잦다. 걔는 별로더라, 그딴 노래를 왜들어? 이상한 새끼들이야, 정치는 말이야, 그 새끼는, 누군가의 뒷담이나 특정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그 과정 속에서, 제정신으로 가만히 있는 나는 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친구인데 그냥 어쩌다 나온 이야기라 인정해야하는 걸까.

    얼마 전 보았던 만화가 생각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어느 시선이나 행동에 대해서, 그것이 틀리다고, 그리고 내 표현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만화였다. 학교나 직장처럼 사람에 둘러싸인 사회에서 나를 제외한 전부를 부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도 않고 설령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런 만화를 그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은 또 어떨지 깊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도 항상 그렇지 않았나. 글로는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적고 현실에서는 누가 누구를 뒷담하면, 친한 친구인데도 그래 걔는 좀 별로더라 하며 우스갯소리로 남겨버리는 내 찌질한 행동들이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들에게 그건 좀 아니지 않냐같은 이야기 따위는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 앞에선 못하면서 친한 친구들에게나 같잖은 정의감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또 남들이 웃자고 한 얘기에 왜 이렇게 진지하냐며 또 한 소리를 들을까봐, 혹은 너도 맨날 그러면서 이런 걸 가주고 그러냐고 윽박 지를까봐, 내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부족하다며 내 입 지퍼를 슥 닫아버리는 많은 시선들로부터 나는 용기를 빼앗긴다. 어쩌면 좋을까.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걸까? 그럼 미움 받지 않고 적당히 자리를 넘기고, 좋은 이야기들처럼 마무리하고 헤어져서 나중에 또 만나자는 멘트로 이 모든 일들이 반복된다고 하면 그게 정말 행복한 걸까?

    반복되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전 술자리에서,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야 그래도 말해보고자 했다. 비록 친구들이 위처럼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정말 믿어주는 친구라면, 오히려 더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을까하는 더 앞을 보는 생각이었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왜 무조건 틀리다고만 이야기해, 그게 맞는 걸 수도 있지. 너무 편협하진 마라, 누구나 그럴 수 있지. 타인이잖아, 취향이지, 이해해라. 그 과정에서 역시나 싶었던 여파를 맞았지만 그건 미움과는 달랐다. 결국 사람이 무서워 입을 꼭 다물었는데 그래도 친구는 분명 친구다.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데, 격하게 공감하고 말았다. 물론 모든 친구들이 아량 있게 내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줄 리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말할 수 있다고 경험한 순간부터, 그건 이전보다 더 긍정적인 가능성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