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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스무번째, 주워담는 일

#주워 담는 일

 

    누군가 부정해도 나는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모든 사유는 같은 흐름이고, 우리가 저마다 가진 말의 기저엔 동일한 논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는 글은 표현법이 다를 뿐이지 모두 같은 이야기며 단지 직업적인 작가들의 글은 더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들에 의해 매문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글 쓰는 일에 관해서 많은 푸념을 하는데, 다름이 아닌 자기 글을 의심하는 일이다. “내가 작가도 아닌데, 이런 글을 써도 누가 봐 주겠냐며 하소연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어쩌면 읽고 있는 당신과 글을 쓴 나도 분명 해보았던 말이다. 분명 글은 배운 모두가 쓸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다. 그렇지만 주변의 시선은 오묘하게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는데, 마치 우리의 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하려는 잣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그저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주워 담아서 표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평가 대상으로 못 쓴다.’잘 쓴다.’라는 구분을 당해야 한다면 그건 분명 옳지 않은 일이다. 그건 폄하를 넘어 나아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에 가깝다. 왜냐하면 글이란 자체로 표현법이지, 평가의 대상으로 보기엔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왜 글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도구라고 생각할까. 우리글은 모두 저마다의 가치고 그것 자체로 우리 분신이다. 예컨대 행복함을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할 때, 중학생과 대학생의 글 차이는 그저 어법과 표현의 차이지, 주어진 가치에 있어서는 큰 간극이 없다. 어리다고 해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비난을 할 이유도 없으므로 그런 표현법이 비난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장을 옮겨 단지 인터넷으로 갔을 때, 누구의 글은 형편없고 우습다는 식으로 폄하 받는 수많은 글들의 가치에 대해서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과연 어떤 글을 쓸까. 남의 글을 우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쓰지 않는데, 그런 일들이 무의미하거나 내가 쓰지 못한다고 일찍이 포기하기 때문이다. 즉 타인의 글을 존중하지 못하는 데는, 스스로의 표현을 부정한다는 까닭이 있다. 그러니 글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역으로 글을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스스로가 글을 쓰는 순간부터 존중의 차원이 비롯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부정당할 글은 단 하나도 없다. 글쓰기는 표현의 한 갈래이고, 전혀 부끄럽거나 과장되는 일이 아니다. 우습고 오글거린다는 일말의 표현들은 진지한 감정으로부터 마주하지 못하는 회피가 서려있는 셈이므로, 본인이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표현하는 일은 정당한 방법이다. 만약 글쓰기를 부정해야 한다면, 몸으로 표현하고, 창작하고 만들고, 예술 하는 모든 행위는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기 위해선 우린 스스로의 글을 타인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더 넓은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다소 중구난방하게 글을 남긴다.

 

글에 정당성은 필요없다.

그냥 쓰면 쓰는거지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읽면 읽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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