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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열한번째, 사소함

#열한번째, 사소함

 

사랑해

  처음에는 하지 않으면 하루를 끝마치지 못할 정도로 반드시 필요했던 이 말이, 시간이 차차 흘러 점점 지겹고 어쩌면 당연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채워왔던 빈칸을 채워야하기에 우린 의무적으로 말한다. 사랑한다고, 사랑해. 정말로, 진짜로,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서로를 사랑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강조하는 순간부터 한편으로나마 드는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를 좋아하는 걸까. 서로가 좋아하고 사귀는 사이면 소위 비밀을 두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내가 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이런 말을 과연 누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그렇기에 둘 사이에는 비밀이 싹트고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원해진다는 사실을 로써 직면하는 순간부터 막으로 가려놓은 두 관계는 처참히 찢어지고 또 망가지고, 가장 생각하기 싫은 단계로 접어들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너 역시도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네가 사랑한다는 말이 줄어들고, 연락이 줄어들고, 말이 줄어들고, 나를 바라볼 때 핸드폰을 본다거나, 내가 아니라 다른 사소한 일들에 더욱 웃는다면 네가 보여주는 모든 사소함으로부터 나의 의문이 자라나 나를 괴롭게 한다. 그게 사소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억울해지는 나는 불편해지는 속내를 감추며 계속 웃기만 하는데,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쉼 없이 반복한다. 정말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사소한 부분조차도 배려해주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 말이다. 심지어는 바쁠 때는 연락이 어렵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 직설적인 몇 마디가, 내게 얼마나 아플지 알면서도. 다른 말로 더 포장할 수 있었을 텐데도. 난 너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거라며 솔직히 말하는 태도가 너무나 아픈데도. 그렇게 나타난 모든 사소함이 사랑해라 말했던 어제를 퇴색시킨다는 걸 넌 알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을 꼭 물고 네가 변하기만을 기다리는 게 고작이다. 정말 네가 바쁠지도 모른다고, 네가 요즘에는 뜸하겠지만 또 내일 아침에는 기쁘게 연락하며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지도 모른다고, 또 화기애애하게 우리 뭐 먹을까하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따뜻한 사소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소한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러니 오늘도 작게나마 메모하고, 보고 싶다고 적고, 사랑한다고 연락하고, 이렇게 일기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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