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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43, 오늘의 빗소리

#오늘의 빗소리

 

    손으로 곱게 메모지를 접고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을 무렵, 바깥으로 거센 바람이 보일만큼 뒤흔들리는 빗줄기가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으면 유독 잿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교 때만 하더라도 푸른빛이 돌았는데, 저변의 먹구름이 이제야 자리를 트고 비를 뿌리는 탓이다. 난 그 소리가 듣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었다.

    적막으로 일관하는 사무실에선 창가 바깥으로 줄기차게 울릴 빗소리를 알 수 없다. 이곳에서는 그저 넘기는 종잇장과 간혹 소곤소곤한 대화, 업무를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만이 공간을 대변할 뿐이다. 이따금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다. 이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난 무심코 일을 멈추고 멍을 때리고 있다.

    고민이 많은 한 달. 생각이 넘치는 하루. 할 일이 쏟아지는 시간. 그냥 빗소리를 듣고 싶어 사무실을 벗어나 복도로 나오고, 왁스작업을 하느라 강의실에서 토해낸 책상들을 이리저리 피해 중앙 홀로 걸어간다. 청소를 위해서 안에 가진 것들을 모두 꺼내놓은 그 장면들을 보자면, 마치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침내 1층을 지나 본관의 뒷문으로 나가고, 차츰 크게 와 닿는 빗소리를 들었다. 바람에 엉킨 빗소리에 한시도 때놓지 않던 폰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있었다. 매일매일 이 장소에서 누군가와 만났고, 그 누군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이유는 줄곧 나에게 있었고 애써 무시하는 일상으로부터 인정할 줄 모르는 자신을 보았다. 그러고보면 지금에 어울리는 말이 떠오른다. 이따금 메모하는 노트에 적은 문장이다.

인연을 앗아가는 자만심. 언제고 정말 깨달을 수 있을까.

 

    글에 몇 백 번이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을 적었다. 수천 번의 결심에도 한 번의 포기가 모든 걸 일그러트린다고. 그리고 난 이후에 빠짐없이 일을 망치곤 했다.

    절실함이 함께라면, 정말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지. 그런 두려움에 하루를 떨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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