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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38, 나도 알지만

#나도 알지만

 

   귀가 열려있다고, 입도 열려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말을 참 잘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나 감동한 적이 많다. 나의 몇 마디가 다른 사람들한테 조언처럼 느껴지고, 감동스럽고, 상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꽤나 선전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따금 내가 타인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제법 감성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다. 물론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고작 글귀를 읽었다고 우는 모습을 보이면 이상하게 보일까 내면을 감추면서도 말이다. 그만큼 타인의 진정성이 있는 모습을 나는 몇 배고 담백하게 이해해줄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나는 자기 고민을 풀어내려고 하면 말문이 턱 막히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다. 까닭이란 게 누구나 그렇지만 나는 더더욱 그렇다. 내 모든 행동과 경험 기억들이 서로 맞물려있어서 어디부터 말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막상 누군가에게 듣는 조언이 내가 2, 3번 생각한 발상에서 크게 지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다고 고민을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결국 고민과 푸념을 푸는 일은 타인으로부터 공감을 받고, 다 아는 이야기에 당연한 조언들 들으면서도 감정적인 격려를 호소하기 때문인 걸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런 호소들을 잦게 받으면서 점점 이야기들에 무색해진다는 사실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다보니 모두로부터 조언을 듣고, 모두로부터 격려를 받는다. 그런 와중에서 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많이 들었다고 해서 그 가치를 훼손할 명분 따위는 없지만 인지하는 나로서는 마음 깊이 새겨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대체 가능한 존재처럼 여겨지고, 그런 감정들이 순간의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작위적인 이야기라고 선입견을 가지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나의 문제다.

   그러다보니 나라는 사람은 자체로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사람에게 공감하고 누구보다 사람을 갈구하면서, 혼자서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겁쟁이가 정말로 다가오려는 모든 배려들을 오히려 가식으로 여긴다니 얼마나 어이가 없나. 모두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 이야기들이 지겹다고 말하는 스스로가 얼마나 배가 불렀나. 그런 와중에도 아직도 나를 정말로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면. 나라는 사람이 가지는 생각이 얼마나 엉켜있는 건지도 헤아릴 수가 없다.

   자기보호가 심해진 배경도 있다. 있지만, 말했듯이 조언을 구하려고 하면 내가 어느 지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기에 어렵다고 한 말과도 같다. 즉 지금 이 글에서는 그런 이유니 배경이니 설명하기엔 길고, 또 굳이 공감과 이해를 구하기도 번거롭다. 즉 내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자신밖에 없고, 그 헤아림조차 구하지 못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인간으로 남아 감정밖에 없는 인간이 될 게 분명하다.

   스스로를 알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읽었는데. 이제는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경계선들이 어려워진다. 자신으로 남고 싶은 걸까. 친구들과 함께이고 싶은 걸까. 왜 사람이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가는지 충분히 증명하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결국 글도 생각도 표현도,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나로 남기 위해 발버둥 하는 장면들이라 생각하므로. 너도 나도 알지만 답답한 마음에 쓰는 글이라 여기고 다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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