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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어딘가에 속하려는 욕심 #어딘가에 속하려는 욕심 나는. 항상 외로웠고 언제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무치게 외롭다. 답답하게 안에 맺혀 목소리가 되지 못한 외로움으로부터, 한을 풀기 위해서 또 다른 만남을 찾아 나서고, 무르익을 즈음이면 또 다시 소외를 느낀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받아야 했다.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말은 곧 사람 사이에서 나자고 싶다는 이야기다. 언제고 줄곧 누군가의 품에서, 누군가에 의해 행동하기를 원했다.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날 섰다고 생각하는 모든 스스로를 버리고 비워, 비운 공간만큼 타인의 생각을 담았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당연히 뻔하다. 나를 버리고 타인을 받아들이다보면. 그건 최종적으로 나를 부정하는 일이다. 온전치 못한 나로부터 받아들이는 타인은 무의미해지고, 그럼.. 더보기
#36, 무서울 때 #36, 무서울 때 늦게나마 과제를 끝내고서. 제법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도, 지금도 열심히 한다고 믿는데도. 나는 무서워서 자꾸 뒤를 돌아보고 밟고 있는 바닥을 살피고 내가 아까 뭘 했었는지 곱씹는다. 무섭고 무서워서 나라는 사람 주변을 살피고 누가 나를 사랑해주는지, 어떤 이유로 사랑받고 있는지 살핀다. 무대에 수 백 번은 거뜬히 올라갈 가수와 연예인들이 활동 중 대뜸 공황장애를 느낀다고 발표할 때면 무슨 그게 그리 어렵냐며 우스워했는데. 제일 우스운 건 나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얻는 게 내 최대의 능력이라 여겼다. 내가 조금 일그러져도 바보같이 보여도 웃음을 주고,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이따금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람 마음에는 저마다 이상.. 더보기
#35, 힘들 때 #35, 힘들 때 정말정말 종일을 굶고 배가 너무고파서 물만 들이킨 그 날, 머릿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은 보기보다 만족스러울 때보다 힘들 때 더 깊은 차원을 생각하는구나. 왜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나면 아무 생각이 안떠오르는 것과는 상반되게도, 배가 고프고 힘들면 왜 내가 힘든지부터 마땅히 욕하고보려고 하니까. 그런 접근으로 본다면 사람은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지금 생각이 깊어지는 모양이다. 더보기
#34, Remember 2014.04.16. #34, Remember 2014.04.16. 왜 굳이 기억해야 하는가. 나 아니어도 추모할 사람 많잖아 그 사람들이 나한테 밥 준거 아니잖아 아냐. 아냐, 그게 아냐.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그런 단순한 이유도 아니다. 양적으로 무조건 추모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말 단순하게도 우리가 세월호를 추모하는 이유는 그것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거대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건 정치성향의 문제도 아니다. 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데 성향의 구분이 필요할까. 그건 유행의 문제도 아니다. 모두가 한다고 해서 따라가는 추모에는 의미가 없다. 나는 기억한다. 4월 한창 모두가 핸드폰을 붙잡고 세월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그 실시간을,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큰 사고를 당했다는 그 이야기를 결코 잊.. 더보기
#33, 확고한 감정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확고한 감정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애인데, 어때요?” “음. 근데 왜 좋아하는 거야?”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뭐.” “글쎄. 넌 항상 이유가 없더라.” 항상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아플 줄은, 그러고 보면 항상 나는 그랬다. 무언가 좋은 말은 잘하고, 있어 보이고 그럴듯한 이야기는 줄곧 늘어놓으면서도 결코 뼈있는 몇 마디와 깊은 생각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어정쩡한 사람이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행복하고, 즐겁고 또 무언가를 좋아하므로 그 자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필 왜 또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깔끔하지 않다. 내게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의미를 가져오는 걸까.. 더보기
서른두번째, 가로등 #가로등 당장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3장은 지우고 다시 썼다. 오늘처럼 뭘 하나를 쓰려고 해도 마음이 다 잡히지 않고 답답한 심정만 남을 때가 종종 있다. 친구와의 다툼이나, 끊긴 연락이나, 묘한 욕설처럼 이런저런 경험들은 울컥한 심정에 막 글을 써 내리고 싶으면서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글이나, 내가 옳지 않았구나 하는 내적인 심정들이 욕심들을 추스르고 만다. 그럴 때면 다시 돌아가 무엇을 위해서 이걸 하는지 돌이켜본다. 왜 감정들을 옮겨 담는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거다. 머릿속에서는 누구나 여러 차례 고민하고 생각할 이야기들을, 언어를 통해서 글로 남기는 일은 제법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 사이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나, 다소 어린 치부들도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쓴 매.. 더보기
서른한번째, 진부한 인간 서른한 번째 진부한 인간, 3.27 나는 진부한 인간일까 어색한 표현들과 모난 논리로부터 내 글이 형편없다고 자주 생각하면서도, 정말 내가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수긍하지 못한다. 애초 진부의 기준은 상대적이니 내 주변부에 비한다면 그렇게 모자라지 않다고 같잖은 희망을 거는 듯싶다. 근데 글을 쓰면서 느끼기를 글은 글이지 왜 내 글이 진부하게 보일지 걱정해야할까.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뻔뻔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옳은 태도라고 배웠으면서도 나는 언젠가 또 줄곧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바빴다. 그럼 결국 글의 표현이 세련되느니 마니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신경 써서 내 진짜 글을 못 쓰는 게 곧 진부한 인간이 아닌가. 본질이란 말이 찰나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누가 내 글을 보곤 의.. 더보기
005, 정말 자유롭게 나는 성숙한 사람이 꿈이었습니다. 내 글들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내 첫번째 우상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싶었고. 실제로 그게 이뤘다고 생각할 만큼 근접한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라 큰 부담없이 실패할 일이 많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한차례의 실패에 큰 충격을 받았고. 대인관계가 뒤엉켜 무너지면서 혼자가 됐습니다.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1년을 보냈고, 대학교때는 내가 무엇을 할지 감당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복학왕'의 표현처럼 그냥 울타리로 도망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신기하게도 대학에 오면서 많은 인연을 만났고, 처음으로 내 학과에 적응하면서 공부가 무엇인지 슬금슬금하고 내 고등학교 일본어 공부와 이어지면서 언어와 번역이 하나의 철학이구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