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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트렌스젠더 얼마 전 트렌스젠더에 관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댓글들의 요약은 이랬다. “트렌스젠더들이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이 오히려 여성상에 대한 강요이자 정형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체성에 있어 여성이라고 강조하며 머리를 기르고 가슴 확대수술을 한다. 그러나 이는 시스젠더적인 폭력이다. 오히려 트렌스젠더들이 큰 가슴과 긴 머리를 기르며 자신이 여성임을 강조하는 순간, 그 자체로 ‘여성적’이란 이미지가 자리 잡히고, 남성들과 여성 모두에게 젠더를 구분하는 이른바 성역할을 만드는 것이다. 오직 연애와 성에만 관심 있는 트렌스젠더들은 현재 사회에 공론화된 여성 인권에는 하나의 관심도 없이 그저 자신들만의 행복에만 도취되어 있다. 그러므로 트렌스젠더들이 피력하는 젠더는 모두 모순이자 구조적인 폭력이다.” (더.. 더보기
열여섯번째, 이상 #열한 번째, 이상 서로를 사랑한다면 서로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 맹목적인 믿음과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이해적인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비추어지는 사랑들은 이상하리만큼 기울어지고 또 때때로 지나치게 흔들린다. 분명 사랑의 본질은 교감과 안정일 텐데도 우린 사랑에 의해 이전보다 지치고 괴로워지는 일이 생긴다.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이 마냥 이상인걸까. 괴롭고 힘들고 지치는 관계는 무엇을 위해 유지하고 보수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겐 어려운 일이다. 정 때문에 사귄다는 표현만큼 힘들고 기운 빠지는 말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나아가 같이 있는 게 불편해지는 시점에서 이미 둘 사이는 끝을 다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의 쓴 글도 비슷한 맥락이듯 인간관계에서.. 더보기
열네번째, 침묵 #열네번째, 침묵 농담을 주구장창 늘어놓다 정말 진지한 얘기가 나올 때. 난 입을 꼭 다물고 나 아픈 얘긴 안한다. 나라는 사람의 특징이나, 고작 이런 내가 타인의 얘기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는다. 또 이게 나다. 나의 침묵은 타인을 위함이다. 분위기를 위해서, 속상한 너를 위해서 기꺼이 귀를 내어주는 나다. 그런데 간혹 사람들은 왜 넌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며 반대로 속상한 내를 들어낼 때가 있다. 난 너를 위해 침묵하고 있는 건데 왜 섭섭해 하는 거야? 라고 물으면 그게 아니라 너도 네 이야기를 해봐, 라고 말한다. 그리곤 또 깨닫기를, 그래. 나는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왜 답답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글을 쓰며 알아냈다. 나는 오직 글을 통해서만 모자라고 답답하.. 더보기
열세번째, 빈자리 #빈자리 자퇴한다고. 아, 그래. 털어놓자면 지방 수준이 거기서 거기라고, 나와 너와 우리를 비하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그 결말은 대개 정해진 듯 곧바르다. 항상 곁에서 어이없지만 재밌는 이야길 늘어놓던 네가 앞으론 자퇴해서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 쓸쓸한 일이겠구나 싶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선택이 있고 그건 자유이며 내가 간섭할 수 없기에, 고작 정 때문에 학교에 남아있다면 되려 한심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말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헤어지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이게 인연의 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하길, 대학교에서 만난 인연은 정말로 얇디 짧다고 했고 난 믿지 않았지만 이제와선 믿고 싶지 않더라도 믿어야 한다. 굳이 사족을 달 것 없이 우리가 헤어지는 일만으로도 증.. 더보기
열두번째, 가치 #가치 나는 때때로 이 블로그에 남기는 글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봐주지 않는 블로그에 혼자서 열심히 적는 글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건 혼자 한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며 스스로 의미를 퇴색시키고 위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내 글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있다. 내 글은 기록이자 위로이고, 추억이자 조언이다. 세상에 가치 없는 글이 없다고 배운 내 어린 날의 글처럼, 내 마음 속에 있는 많은 응어리나 또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나, 내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내 2017년은 어떤 한 해였는지,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건 그 자체로 가치다. 내가 쓴 모든 글은 나를 향해 쓴 글이기에 그건 그 자체로 위로였고 조언이었다. 내가 힘들거나 혹은 도저히 글을 쓸.. 더보기
열한번째, 사소함 #열한번째, 사소함 “사랑해” 처음에는 하지 않으면 하루를 끝마치지 못할 정도로 반드시 필요했던 이 말이, 시간이 차차 흘러 점점 지겹고 어쩌면 당연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채워왔던 빈칸을 채워야하기에 우린 의무적으로 말한다. 사랑한다고, 사랑해. 정말로, 진짜로,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서로를 사랑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강조하는 순간부터 한편으로나마 드는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를 좋아하는 걸까. 서로가 좋아하고 사귀는 사이면 소위 비밀을 두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내가 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을 과연 누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그렇기에 둘 사이에는 비밀이 싹트고 공존할 수밖에 없.. 더보기
열번째, 절박함 #절박함 “나는, 글이 쓰고 싶다. 그게 내 꿈이거든.” “글?” 어쩌면 신문 읽는 애를 괜히 건드렸나 싶으면서도, 놈은 내 이야기를 들으려는 듯 몸을 비틀어 뒷 좌석의 나를 처다보았다. 그리곤 안경을 추켜세우곤 말하려는 모양새를 하니 내 말에 대답해주려는 모양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저 몇 마디는 실은 마음속으론 어렵게나마 용기내어 한 말이었지만, 아마도 이 놈은 내 그런 어려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글 좋지.” 너는 좋다고 대답했지만 역시 넌 세상에 염세적인지라 뒤에 따를 말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내게 조언하고 또 대답할지에 대한 걱정도 함께였다. “어차피 자기소개서라든가. 그런걸 하려면 글도 잘 써야하잖아?” 그런 이야기로 이어질줄 차마 몰랐는데. “그렇지.” 나는 그런.. 더보기
아홉번째, 관계의 상대성 #관계의 상대성 정말로 친했던 친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울려 계속 같은 반에 집까지 가까웠던 우린 남들이 형제라고 부를 만큼 가깝고 친한 사이였다. 6년이란 시간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붙어 다니며 지겹도록 놀았던 우리 둘은 적어도 당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중학교를 진학하고 내가 이사를 가며 우린 만나기 어려워졌고 그 무렵이 그렇듯 새로 친구를 사귀면서 아마도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그러나 내게 그 친구의 이름과, 집 주소, 생김새는 언제까지고 하나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기억 속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나와 잘 맞고 가장 가까운 친구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분명히 생각했다. 8년 뒤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게 있어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