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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른한번째, 진부한 인간

서른한 번째

진부한 인간, 3.27

나는 진부한 인간일까

 

    어색한 표현들과 모난 논리로부터 내 글이 형편없다고 자주 생각하면서도, 정말 내가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수긍하지 못한다. 애초 진부의 기준은 상대적이니 내 주변부에 비한다면 그렇게 모자라지 않다고 같잖은 희망을 거는 듯싶다. 근데 글을 쓰면서 느끼기를 글은 글이지 왜 내 글이 진부하게 보일지 걱정해야할까.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뻔뻔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옳은 태도라고 배웠으면서도 나는 언젠가 또 줄곧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바빴다. 그럼 결국 글의 표현이 세련되느니 마니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신경 써서 내 진짜 글을 못 쓰는 게 곧 진부한 인간이 아닌가. 본질이란 말이 찰나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누가 내 글을 보곤 의연케 웃으면 참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그 자체로 진솔한 서사니까 난 당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날 많은 고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수많은 고민에 묻혀 살 생각은 없다. 그것역시 진부한 생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표현이라면 원하는 만큼 하고, 실수는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 이야기들을 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의 글이 생각난다. 글이 뭐 대단한 논문인 것 마냥 생각하고 입을 꼭 다문 어릴 때, 옆 반의 어느 애가 자기가 글을 쓴다며 보여준 노트의 내용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내가 가장 혐오하는 유형의 소설들, 이른바 라이트노벨 장르였다. 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론 유치하기 짝이 없다며 비웃고 마치 그 아이를 내팽겨 치듯 노트를 던졌다. 이따위 진부한 글을 쓸 바에는 안 쓰는 게 낫다며 속으로 오래 비웃었는데. 먼 훗날 그 옛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 누구도 타인의 노력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는 점, 또한 장르는 장르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들에 관해서 말이다. 글로 읽는 우리야 당연한 사실이라 여기지만 나는 실제로 작가/업계 사람이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몇 차례 본적이 있다. 아무리 못써도 이해해야 할 게 글이고 보살펴야 할 이야기들이라 믿어왔는데, 그런 거친 표현과 매문의 우상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딴에 해줄 말은 없었다. 그저 내가 저런 사람이었구나.’란 생각으로 반면교사 삼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진부한 인간임을 매사 걱정하려고 한다. 정말 진부한 인간은 글의 수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글을 여기는 태도에서 나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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