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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른번째, 매문

#매문

     

      작가들이 보통 하루에 2만자의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진지하게도 난 하루에 20,000자는커녕 3,000자를 쓰기도 어려운 현실인데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덥석 믿고는 내 초라한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뭐 비관하면 뭐하겠냐며 훅훅 털어내고 내 딴 나름의 글을 쓰기는 하지만, 역시나 부족한 능력에 아쉬움은 겉돈다. 그러다보니 본질적인 질문이 떠돌았다. 나는 매문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걸까. 난 내 감정을 상품화시키는 사람인걸까? 나는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걸까? 강박적인 습관으로 글을 쓰는 순간부터 글의 진실성이 일그러진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보면 난 모든 글에 모순이 존재하고, 순간순간 밀려들어오는 감정을 잊을까 주워 담는 식의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럼 많은 질문 중 하나는 소거할 수 있다. 나는 내 감정을 상품화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을 보존하기 위해 글을 쓴다. 즉 이는 순수문학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순수 문학으론 돈을 벌 수 없다. 그러니 난 돈 벌기 위해서 글을 쓰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내 글은 매문을 위한 글이 아니다. 난 그저 내 글을 쓸 뿐이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생각한다. 만약 내 소설이 어느 누군가에게 팔린다면, 내 전부를 내려놓고 글에 매진할 수 있을까하는 큰 기대감 말이다. 옛날 겪었던 일화들과 감정들을 뒤섞어 인위적으로 만들고 내 세상을 만들어 이루는 가공물을 어느 누군가가 보고 감동하고 슬퍼한다면, 그것만큼 감동스러운 일이 또 없겠다. 국문학과 친구의 말처럼 누군가가 내 글을 사랑해준다면 그게 어떤 글이든 충분하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로. 너무 과장된 상상인걸까? 또 과한 기대인걸까. 어쩌면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일들은 아닐까. 누가 내 글을 보고 감동한다니, 나처럼 너처럼 우리처럼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그런 글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관심 받거나 비평받거나 할 때, 우린 반발감보다 누군가의 생각을 보고 느낀다는 점에 더 크게 놀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만약 글을 쓰는 누군가가 순수문학을 떠올리며 매문을 두려워할 때, 좀 더 그런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타인과 글을 공유하는 기쁨을 앞서 생각했으면 싶다. 물론 내 옛날처럼 고집불통의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