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두근거림
따라붙는 공허함
어쩌면 냄비같은 난, 설거지하듯 스스로를 살펴본다.
잣대없이 기준을 타인에게 양도한 때. 질질 끌려다니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편하다.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듣듯. 그 기억을 회상하는 일처럼 가볍게 말이다. 그 여름과 겨울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막연하게 소논문을 쓰며 보낸 시간이 행복했던 걸까. 무언가 하나라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 젖었던 걸까. 이미 한참이고 멀어진 지금에서야 네 심정이 궁금해진다.
시간이 빠르다는 걸 알았다. 자비가 없음은 알았지만, 여유가 없다는 걸 추가로 알았다.
나도 변하다는 걸 느꼈다. 사람이 한결 같을 순 없음은 알았지만, 그 변화가 제멋대로인 건 몰랐다.
경험은 내게 조언을 묻지 않고 찾아오며, 혼란은 길가다 벌레를 밟는 양 종종 가볍게 나타난다.
가득한 열등감이 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게 자신임을 제대로 깨닫기도 했고.
난 너희들이 쓰는 글이 달갑지가 않다.
좋지도 재밌지도, 유익하지도 감동스럽지도 않다.
난 열등한 인간이어서,
누군가가 읽는 자기개발서조차 참을 수가 없다.
그딴걸 읽을 바에는 스스로에게 할애하라며
실상은 어떤가. 얼마나 추잡한가.
또 누군가는 말한다.
죄책감에 빠져살지마,
자괴감 갖지마 자신을 가져
그러나 난 늘 자만심만 가져봤지, 내가 잘못했다고 진정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난 늘 거짓으로 살아왔고, 사람들은 내 거짓에 진심을 덧붙여 조언해준다.
그래서 난 늘 추악한 인간이었고 늘 괴롭지 않으면서도 괴롭게 살았다.
그런 내가 타인의 글을 읽는다는 건 정치인의 양심고백만큼 별볼일없는 꼬라지다.
그렇더라도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추잡하고 모순적인 내가
정말 진심으로 너 하나만은 궁금하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네 심정이 궁금하다.
내가 널 버렸던 그 날에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왜 아직도 네가 쓰려던 글이 잊혀지지 않을까.
한참이나 열등한, 진실로 열등한 나같은 인간이
왜 너에게만은 내가 졌다고 꼭 인정하며 살까.
넌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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