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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51, 여자 그리고 결혼

#51

2018.09.21

"이모부요?"

"그래 이모부. 너도 옷입고 나와"

  내게는 여섯 이모가 있다. 그 중 막내 이모는 마흔이 넘었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한손에는 빗을, 한손에는 담배를 키링처럼 달고다니는 이모는 언제나 뚱한 표정으로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곤 했다. 술을 먹고 들어와선 안주를 내게 주거나 하던 기억도 있다. 이모는 언제고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눈매는 꼭 엄마와 닮았지만, 미소 가득하고 웃기를 좋아하시던 엄마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대체 이모는 무슨 생각을 할까. 너무나도 어른이 짙은 이모였다.

  그런데 내가 스물이 되고 나서 난데없이 이모는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사실 고등학교 적에도 몇 번 있었다. 그건 무엇을 위한 연애였을까. 사랑이라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돈 얘기가 오가는, 그래 마치 필요해서 하는 작업처럼. 하나의 과제처럼. 정말 잘생긴 아저씨부터, 비쩍마른 아저씨까지 다양했다. 나는 네 사람을 기억하지만 어느 누구도 두 번을 보지는 못했다. 모두 한번 씩 네번을 본 셈이다. 그건 사랑이라기엔 너무나 묽었다.

  그런데 내가 스물 둘에 가까워질 무렵에, 이모는 또 다시 새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러려니 했고, 그때처럼 처음인듯 모른 척 했다. 이전과 닮은 분위기. 오가는 덕담. 식사자리가 그렇지. 그런데 의외의 말을 들었다. 결혼이라. 이제 이모부가 될 사람이란다.

  정말 이모부라 확신할 만큼 값어치가 있는 훌륭한 사람이었던 걸까. 당사자가 아닌 3자인 나는 알 수 없다. 훤칠한 키에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는 했다. 조금 투박하지만 결코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았다. 나를 어르고 달래듯 타이르는 모습에서, 정말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사람이기도 했다. 은연 중 하는 표현이나 지식. 가지고 있는 마인드에서 조금이지만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만적인 나조차도 말이다.

  그리고선 휴학생인 내게 일까지 권해주었다. 배관 설비에서 시다바리를 해보랜다. 솔직히 엄청 놀랐다. 그런 기회를 얻으리라곤,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이모부가 알리는 없겠으나, 이미 나는 아르바이트를 일곱 군데 모두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모부는 식사자리에서 이모의 손을 조심스레 쥐고, 건너편에 앉은 엄마와 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모를 만나서 너무 행복하다고, 그리고 이모의 웃음을 보았다. 집에서 엄마와 언성을 높이며 몇 번이고 싸운 이모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배란다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흔들고 빈 소주병에 담배를 꼬던 이모가, 이런 이모부를 만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모부의 말마따나 그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야기로 들었고, 행동으로 유추했을 뿐이다. 여전히 나는 이모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겉은, 겉일 뿐이니까.

  다만 나는 이모와 이모부의 사랑이라던지, 제 3자가 감히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이모의 마음이 궁금할 뿐이다. 적기를 지나 결혼을 준비하는 이모의 마음이 궁금할 뿐이다. 사랑인가. 아니면 준비인가. 관례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이모의 미소가 행복해서 절로 나오는 진심일지, 아니면 언제고 보여주던 적적함을 가리기 위한 작위인지. 어떤 선택이든 이모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믿기에는. 난 너무나 많은 사실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결혼을 가면 그만이랬다. 그 말, 너무나도 듣기 버거웠다. 나의 가족을 넘어 내 친구들에게 조차 적용되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 결혼은 행복해서 하는 결혼일까. 행복을 위한 결혼일까. 훗날 내 주변의 친구들도 결혼을 할 테고. 시집을 갈 테다. 나는 이 자리를 고수할지 변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관례처럼 이어지는 수순이라면, 결코 타인의 결혼을. 더욱이나 여자 그리고 결혼을 아름다운 성역으로만 보긴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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