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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네번째, 소외처

소외처

  나는 내게 소외당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격도 충분하며 남들보다 좋은 여건을 가졌다. 없는 말주변과 관심사가 드물고 타인에게 신경 쓰지 않으며 자기생각이 많은 사람이니 자연스레 주변으로부터 소외받기 마련이다. 소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는 사회에서 단지 스스로가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왜 나쁘고, 정말 나쁘다고 한다면 오히려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려 한다. 인식의 차이일까. 물론 나 역시도 누군가를 좋아했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하는 일에 결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낯선 분위기 사이에서 나의 다정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든든하네, 성격이 좋구나, 긍정적이야. 호의를 베풀면 대부분 좋은 대답이 들려온다. 생각건대 그건 자기애의 과신이자 보답을 기다리는 의도적인 행위들이었다. 우습게도 자랑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보니 일삼은 짓들이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무엇이 돌아올 수 있는가. 의외로 많은 보상들이 돌아온다. 다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보답 받을 수 없다. 내 시작이 안쪽부터이듯, 내 결론 역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즉 외로움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내 사유를 좌우하는 기틀, 그 자체의 중심을 이해하고 또 헤아려야 변화할 수 있다. 말은 좋지만 아직도 고민하긴 마찬가지다.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길은 일부로 마음속에 가둔 사람들을 풀어주고 이른바 욕심을 놓아 한적한 여유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내 안쪽을 더듬으면 테두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테두리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때 생기는 산물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내 손짓으로 박박 긁혀 어스름 지워져있다. 덧난 흔적이 노골적일수록 안 좋고 힘들며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다. 어쩌면 비약이었을지도 모르고, 오해였을지도 몰라 미안해하는 감정들이다. 우울한 부분을 묘사하자면 끝도 없고 덩달아 사람을 괴롭게 만들기에 말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내게 진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그 따뜻한 말엔 감동했지만 난 차마 내가 힘들고 괴로워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곤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난 그런 인간이었고 결코 남의 짐이거나 문제 덩어리로 남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인간관계는 더 고착화 되서, 표면적으로나마 웃고 떠드는 얄팍한 관계사이로 진짜 깊게 매인 관계들은 끊어져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속으로 외롭고 괴롭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이, 마치 길고양이처럼 안쓰러웠다. 내 모습이지만 안쓰러웠다. 무려 최근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난 이제 자유로이 소외하려고 한다. 소외받는 것이 아니라 자처해서 타인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어쩌면 이건 소외가 아닌 소통에 앞서 소외를 가장하는 약 처방처럼 보인다. 이곳에서나마 나는 혼자가 되어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 기술이나 혹은 되도 않는 문학 단어들을 점철시켜서 있어 보이는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 난 어리고 표현도 서투르며 아직 세상 볼 줄도 모르는 애니까.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 하에 이 글을 쓴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제목이 소외처란 걸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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