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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43, 오늘의 빗소리 #오늘의 빗소리 손으로 곱게 메모지를 접고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을 무렵, 바깥으로 거센 바람이 보일만큼 뒤흔들리는 빗줄기가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으면 유독 잿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교 때만 하더라도 푸른빛이 돌았는데, 저변의 먹구름이 이제야 자리를 트고 비를 뿌리는 탓이다. 난 그 소리가 듣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었다. 적막으로 일관하는 사무실에선 창가 바깥으로 줄기차게 울릴 빗소리를 알 수 없다. 이곳에서는 그저 넘기는 종잇장과 간혹 소곤소곤한 대화, 업무를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만이 공간을 대변할 뿐이다. 이따금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다. 이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난 무심코 일을 멈추고 멍을 때리고 있다. 고민이 많은 한 달. 생.. 더보기
#37, 어딘가에 속하려는 욕심 #어딘가에 속하려는 욕심 나는. 항상 외로웠고 언제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무치게 외롭다. 답답하게 안에 맺혀 목소리가 되지 못한 외로움으로부터, 한을 풀기 위해서 또 다른 만남을 찾아 나서고, 무르익을 즈음이면 또 다시 소외를 느낀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받아야 했다.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말은 곧 사람 사이에서 나자고 싶다는 이야기다. 언제고 줄곧 누군가의 품에서, 누군가에 의해 행동하기를 원했다.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날 섰다고 생각하는 모든 스스로를 버리고 비워, 비운 공간만큼 타인의 생각을 담았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당연히 뻔하다. 나를 버리고 타인을 받아들이다보면. 그건 최종적으로 나를 부정하는 일이다. 온전치 못한 나로부터 받아들이는 타인은 무의미해지고, 그럼.. 더보기
서른두번째, 가로등 #가로등 당장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3장은 지우고 다시 썼다. 오늘처럼 뭘 하나를 쓰려고 해도 마음이 다 잡히지 않고 답답한 심정만 남을 때가 종종 있다. 친구와의 다툼이나, 끊긴 연락이나, 묘한 욕설처럼 이런저런 경험들은 울컥한 심정에 막 글을 써 내리고 싶으면서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글이나, 내가 옳지 않았구나 하는 내적인 심정들이 욕심들을 추스르고 만다. 그럴 때면 다시 돌아가 무엇을 위해서 이걸 하는지 돌이켜본다. 왜 감정들을 옮겨 담는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거다. 머릿속에서는 누구나 여러 차례 고민하고 생각할 이야기들을, 언어를 통해서 글로 남기는 일은 제법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 사이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나, 다소 어린 치부들도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쓴 매.. 더보기
서른한번째, 진부한 인간 서른한 번째 진부한 인간, 3.27 나는 진부한 인간일까 어색한 표현들과 모난 논리로부터 내 글이 형편없다고 자주 생각하면서도, 정말 내가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수긍하지 못한다. 애초 진부의 기준은 상대적이니 내 주변부에 비한다면 그렇게 모자라지 않다고 같잖은 희망을 거는 듯싶다. 근데 글을 쓰면서 느끼기를 글은 글이지 왜 내 글이 진부하게 보일지 걱정해야할까.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뻔뻔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옳은 태도라고 배웠으면서도 나는 언젠가 또 줄곧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바빴다. 그럼 결국 글의 표현이 세련되느니 마니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신경 써서 내 진짜 글을 못 쓰는 게 곧 진부한 인간이 아닌가. 본질이란 말이 찰나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누가 내 글을 보곤 의.. 더보기
서른번째, 매문 #매문 작가들이 보통 하루에 2만자의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진지하게도 난 하루에 20,000자는커녕 3,000자를 쓰기도 어려운 현실인데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덥석 믿고는 내 초라한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뭐 비관하면 뭐하겠냐며 훅훅 털어내고 내 딴 나름의 글을 쓰기는 하지만, 역시나 부족한 능력에 아쉬움은 겉돈다. 그러다보니 본질적인 질문이 떠돌았다. 나는 매문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걸까. 난 내 감정을 상품화시키는 사람인걸까? 나는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걸까? 강박적인 습관으로 글을 쓰는 순간부터 글의 진실성이 일그러진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보면 난 모든 글에 모순이 존재하고, 순간순간 밀려들어오는 감정을 잊을까 주워 담는 .. 더보기
스물아홉번째, 나의 우상으로부터 #나의 우상으로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었으므로 도울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도우리라 마음먹었다. 할 줄 아는 내가 가능한 일이라면 손 뻗어 나서고 함께하길 바랐다. 그런데 인간은 어쩌나 이기적인지 막상 상황이 다가오면 어쩔 줄 몰라 난처함부터 드러내고, 이제는 내가 중립에 서야하는 게 아닌가하는 심정들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두 우상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본디 인간관계에 중립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난날들의 경험들이 이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뭐가 됐든 어느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며, 그럴 바에는 타당한 방향을 적시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쪽을 지지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만에 하나 그 양쪽 모두가 내게 소.. 더보기
스물여덟번째, 기회와 욕심 #기회와 욕심 분명 나는 능력 있거나 사랑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따금 주어지는 기회들이 나를 혹하도록 만든다. 내 노력 덕택인지 나를 아껴주는 몇 사람의 과분한 제의, 권유로부터 많은 고민 때문에 그렇다.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도 무슨 어떤 일을 맡아달라는 많은 처사들로부터 난 기회에 앞서 과욕이 아닌가하는 의심부터 든다. 나는 정말 나에게 맞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욕심에 앞서 손과 입을 남용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무리 권유에 의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여유롭지 못하고 해당치 못하면 덩달아 타인까지 피해 입는데, 그래서 모든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말처럼 되지 않으니 말이다. 작년 말레이시아를 다녀오면서도 엄청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겉과 다르게, 속으로는 의아한 감정들.. 더보기
스물일곱번째, 아직 너무나도 어리다는 것 #아직 너무나도 어리다는 것 시간이 지난다고 절로 성장하는 게 아니구나.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채하고 넘어 갔던 게 지난 21년이구나. 설령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피한 게 여태까지의 나구나. 그러면서도 난 알고 있으니 노력하면 그만이라고 쓴 게 내 글이구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 자기회개에서 한탄할 만큼 한탄하자면 끝이 없지만 분명한 사실들은 적어도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새길 필요성이 있다. 나는 아직 너무나도 어린데,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언제까지고 어른인척 또 어른처럼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가 내 글을 봤을 때 장황한 이야기인데 뭘 진지하게 써놨냐며 비웃음 살 때면, 화에 앞서서 부끄러움만 들어 반박 한마디 못하고 지우개를 움켜쥐는 나의 모습은 부정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