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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50, 무뎌짐

무뎌짐

2018.09.21.

 

  글을 쓰지 않고서 시간이 지나면, 그때 그감정이 다 어디갔는지. 녹아든 솜사탕처럼 형태조차 없다. 무뎌지는 거다. 그냥 그렇게. 그건 가진 게 아니라 찰나동안 쥐어든 욕심같나 보다. 솔직히도 대단한 성공을 바랬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변태같은 글을 쓸 이유가 없지 않나. 남들에게 보이려는 관음을 대단한 위세처럼 떨친 본인이 부끄럽다. 근데, 나는 부끄러운 게 대단하지 않다고 본다. 떨쳐내고, 새로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언제나 다짐한다. 하나의 모토가 모든 것을 기반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또한 기억한다. 내 글을 보고 비웃던 동기들의 모습이라던지, 이런저런 내 실수로 꽉 찬 추억의 풍경이라던지, 사실 나라는 사람을 파헤쳐보자면 누구 못지않게 못난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을 순 없다. 부끄러운 게 별거야? 그래도 소용없다. 후회라는거, 너무 못났다. 후회하면 뭐가 남을까. 질퍽해진 감정때문에 응어리지고 무거워지면 누구 고생인가.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일부로 이런 사단을 내진 않았을 테다. 선택은 갈림길을 만든다. 이따금 갈림길은 교차하고, 교차점에서 우리는 변화한다고 하지 않나. 자기개발서에서 주구장창 떠들 이런 이론들. 내가 매일 비웃던 그런 말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백이면 백을 실수한 자신이 그런 얘기를 비웃을 자격이 있나.

  나는 다시 무뎌지고 있다. 한참이나 얼룩진 사람이다. 무엇을 쓰든 감정을 토로하려는 솔직한 태도는 이제 없다. 사실 그럴 수도 없다. 이제 글을 쓰면 묻어날 내용이 염세밖에 없어서, 세상에 열등감만 가득하고 화만 가득한 아저씨 그 이상이 아닌가 보다. 차라리 그래서 무뎌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기도 하다. 너 진짜. 이기주의라고, 태도 엉망이라고, 왜 그러냐고. 분명 몇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는데. 뒤바뀌어버린 내 입장과 태도와 행동. 내가 무엇에 의해 바뀌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야. 나는 꼰대와 다를 게 없는 거다. 내 잘못도 모르는 인간, 항상 후회만 하는 인간, 그렇다고 부끄러움을 가질 줄도 모르는 사람.

  염치없는 사람이 되는거다. 그렇게 무뎌져 가는거다. 밑도 끝도없이 화만 내면서,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로 아는 척 하는 그런 우스운 사람. 내가 커가면서 제일 많이 느낀 혐오를. 이제는 내가 자진해서 입는 걸 테다.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간절히 바란다는 심정을 수 없이 겪었는데도 이런 걸 보면 알 법하다. 말로만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걸 안다. 집 구석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보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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