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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번째, 짝짝

2017.11.02.

  그러려니 했던 어제가 지나 오늘이 찾아오더니 대뜸 내게 하는 말은 그러려니 할 수 없다는 영문 모를 이야기였다. 시간은 매순간 기대와 희망을 비집고 들어와 사람을 엉켜놓는다. 이제는 괜찮을까 싶었던 내 기대도 마찬가지로 흠씬 망가져서는 앞으론 어쩌면 좋을까란 잡스러운 푸념을 내뱉도록 만든다. 정말 내가 --를 좋아하긴 했을까, 혼자서 이뤄지는 일방적인 --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후회만을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려면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해야할 텐데도 자신이 어떤지는 불보 듯이 뻔하다.

  그래. 나는 비로소 추한 인간임을 인정해야하고 그래야만이 갈라지는 시간을 잡을 수 있다. 엉키고 뒤엎인 나의 관계 사이에서 내가 잡아야할 줄이 무엇이고 놓아야 할 실수가 무엇인지를 판도해야 더 나아갈 수 있다. 다만 그 과정 사이에 일어날 많은 감정들과 옭아맨 두려움들이 내 발 딛을 모든 곳에 있을까하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겠다. 여태까지 한 아이만 바라보고 오직 너만을 사랑할 수 있기에 안타까워 보일 수 있었던 사랑이 사실 온갖 모순으로 점칠되고 유아틱한 장난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두려움이 또 어디 있고 어디 있을 수 있을까.

  그래. 감히 누군가를 함부로 사랑한다고 입담아 말할 때, 이에 뒤따라올 많은 책임들을 가벼이 여기어서는 아니 되고 난 그러지 못했으므로 이 지경에 왔겠다. 모두가 입담아 넌 어려우니 포기하란 말에 둘러싸이는 전적인 압박감과 부담감에 시달려 정말 괴로운 상에 맺혀본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어디있을까. 동시에 이런 고통이 모두에게나 일어나는 사소하고도 일반적인 하나의 예시라 한다면, 그것마저도 버틸 수가 없다. 나아가서 모두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 이정도의 크기를 가졌다면 개개인이 가지는 세상의 역량이 얼마나 거대한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우습게도 마음 한구석이란 미시적인 세계에서 세상 전체의 인류란 거시적인 결말이 직접 결부된다는 점은 참 어이가 없다. 같잖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걸보니 진짜 할말이 없나보다.

  요컨대 가진 것 없는 거지가 과거에 있던 온갖 일들을 부풀리고 꾸며내며 자신이 비극적인 주인공이고 그 결과에 의해 이 지경이 됐다고 변명하는 그 비겁하고 한심한 꼴을 상상한다면 내 모습은 거지와 유사하고 혹은 그 이상의 부끄러움이겠다. 지난날 단 하나의 노력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그 어리석은 과거로부터 하나라도 부풀려보려는 내 허황된 심정과 허울터울들이 더욱 나를 달그락거리게 만들고 있으니, 이제 와서라도 나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모두를 지워내야 함이 옳겠지. 옳겠다. 오직 그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고 때문에 반드시 해야한다.

  이제 정말로 안녕이라 고백컨대, 감히 너를 함부로 입담아 부르지 않겠다.

짝사랑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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